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평면도는 안토니 가우디가 1883년부터 새로 설계했습니다. 가우디는 그 1년 전에 시작된 프로젝트의 지휘를 넘겨받았습니다. 그는 중세 대성당의 고전적인 구성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비전을 더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에 맞춰 조정되어 왔지만, 원래의 도면은 지금도 새로운 건축가들에게 꼭 필요한 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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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첫 설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사에 관한 글에서 설명했듯이, 성당의 첫 번째 건축가는 가우디가 아니었습니다. 건립 추진자들은 처음에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를 선택했고, 그는 1882년 공사 지휘를 맡았습니다.
교구 건축가였던 그의 원래 설계도는 당시 유행하던 양식을 따라 네오고딕의 고전적인 공식을 적용했습니다. 뾰족한 아치형 창, 외부의 버팀벽과 플라잉 버트레스, 가늘고 뾰족한 종탑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재료 비용을 둘러싸고 이 건축가와 추진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고, 결국 그는 불과 1년 만에 해임되었습니다. 그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휘를 맡게 된 사람이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젊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였습니다.
가우디의 설계
가우디가 왔다고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곧바로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레우스 출신의 이 건축가가 성당에만 전념한 것은 1914년부터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가우디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원래 설계에 혁신적인 시각을 조금씩 더하며 자신의 대작을 다듬어 갔고, 마침내 설계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바실리카식 평면을 가진 중세 대성당의 고전적인 구성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가우디는 혁신적인 시공 방식과 함께 그리스도교, 자연, 기하학, 나아가 세계 전반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천재적인 관점에서 나온 상징적·기능적 요소를 더해 그 개념을 현대화했습니다.

가우디는 생애 마지막 몇 해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바쳤으며, 성당의 극히 일부만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늘 알고 있었습니다. 1926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완성된 것은 성 바르나바의 탑뿐이었습니다.
불타 버린 도면과 프로젝트의 계승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뒤 여섯 명이 넘는 건축가가 차례로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의 제자 도메넥 수그라녜스였고, 현재(2024년)는 조르디 파울리 이 올레르가 공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공사를 이어 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1936년 스페인 내전 중에 원본 도면과 석고 모형, 초기 사진 등이 불타 버린 뒤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다행히 1939년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킨타나가 지휘를 맡았을 때는 가우디 작업장의 자료 일부가 이미 회수되어 있었고, 잡지 “Àlbums del Temple”에 실린 도면과 사진도 남아 있었습니다. 덕분에 레우스 출신 거장의 구상을 존중하며 공사를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평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고딕 건축의 전형인 라틴 십자가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개의 웅장한 파사드와 위쪽 끝의 후진(앱스)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우디는 18개의 탑을 설계했습니다. 파사드에 있는 12개는 사도를 상징하고, 6개는 중앙에 있습니다. 172.5m 높이의 주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봉헌되었고, 이를 둘러싼 5개의 탑은 네 복음사가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합니다.
아래는 여러 매체나 공식 웹사이트에 실린 사그라다 파밀리아 평면도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