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자리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유명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했으며, 아직 미완성이지만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오늘날 스페인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기념물 중 하나로, 매년 약 450만 명이 찾습니다. 흥미진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사가 궁금하신가요? 계속 읽어 보세요!

목차
프로젝트의 시작
성가정(Sagrada Família)에 봉헌하는 성당을 짓자는 구상은 1866년 무렵에 나왔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이 야심 찬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협회를 세운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신고딕 양식의 성당이었습니다. 필요한 자금이 모이자 1882년, 설계는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게 맡겨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논쟁과 의견 충돌 끝에, 곧 원래 설계를 바꾸고 보다 현대적인 양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해 건물 부지가 마요르카 거리(carrer de Mallorca)로 정해졌고, 성당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1883년 재정 문제로 중단되었습니다. 자금난은 이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사 내내 되풀이됩니다.
다행히 1884년 바르셀로나의 한 부유한 가문에서 큰 기부를 받아 공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 건축사에서 가장 야심 차고 논란이 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의 합류
1883년,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는 협회 창립자 조셉 마리아 보카벨라와의 불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프로젝트에서 물러났습니다. 보카벨라는 저명한 건축가 조안 마르토렐(Joan Martorell)의 자문을 받고 있었고, 그에게 공사 책임을 맡기려 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사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르토렐은 제안을 거절했고, 프로젝트는 당시 갓 서른을 넘긴 레우스 출신의 젊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에게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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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이미 혁신적인 양식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계에 그가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었으며, 건물의 모든 디테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맡은 초기에는 다른 작품도 함께 맡았지만, 1914년부터는 오로지 성당 건축에만 전념했습니다.
가우디는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넘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프로젝트에 매달렸습니다. 그동안 원래 설계와 이후의 설계를 여러 차례 고치며 자연과 가톨릭 상징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를 더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지하 경당(크립트), 후진(앱스), 탄생의 파사드 등 성당의 가장 중요한 부분 몇 곳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파사드를 위해 설계한 탑이 모두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중 단 하나, 성 바르나바 탑만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우디의 후계자들
1926년 안토니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뒤,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은 여러 건축가의 지휘 아래 이어져 왔습니다. 도밍고 수그라녜스(Domingo Sugrañes), 프란세스크 킨타나(Francesc Quintana), 이시드레 푸이그 이 보아다(Isidre Puig i Boada), 류이스 보네트 이 가리(Lluís Bonet i Garí), 프란세스크 카르도네르(Francesc Cardoner), 조르디 보네트 이 아르멩골(Jordi Bonet i Armengol), 조르디 파울리 이 오예르(Jordi Faulí i Oller)가 그들입니다.
도밍고 수그라녜스는 가우디 사후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1926년부터 스페인 내전 시기인 1936년까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일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였지만 수그라녜스는 탄생의 파사드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프란세스크 킨타나는 1938년 도밍고 수그라녜스가 세상을 떠난 뒤 공사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의 첫 과제 중 하나는 내전 중 훼손된 지하 경당과, 가우디가 건물 공사를 이어 가도록 남긴 모형들을 복원하는 일이었습니다. 1956년에 착공한 수난의 파사드도 킨타나가 책임졌습니다.
1966년에는 이시드레 푸이그 이 보아다가 킨타나의 뒤를 이어 수난의 파사드 공사를 맡았습니다. 1974년에는 류이스 보네트 이 가리가 푸이그 이 보아다의 뒤를 이었고, 주로 같은 파사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프란세스크 카르도네르가 짧은 기간(1983~1985년) 공사를 이끈 뒤, 조르디 보네트 이 아르멩골이 책임을 넘겨받았습니다. 보네트 이 아르멩골은 학교 건물을 복원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다양한 기술 혁신을 도입했습니다.
2012년에는 조르디 파울리 이 오예르가 이끄는 팀이 공사를 맡아, 건축 면에서는 아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사의 마지막 장이 될 부분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파울리는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했으며, 성당에서 가장 새로운 탑들을 짓고 있습니다.
원래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전체 완공은 어렵게 되었지만, 2026년은 그래도 역사적인 해가 될 것입니다. 6월 10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봉헌되며, 봉헌식은 교황 레오 14세가 주례합니다. 교황의 바르셀로나 사도 방문은 가우디 서거 100주년 당일과 겹칩니다.
영광의 파사드를 포함한 공사 전체의 완공 시점에 대해 건설위원회(Junta Constructora)는 2033~2035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연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사에는 중요한 해가 가득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 1882년: 프로젝트 시작.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 이 로사노가 건축가로 선정됩니다.
- 1883년: 비야르 이 로사노가 사임한 뒤 안토니 가우디가 공사를 맡습니다.
- 1885년: 지하 경당에 있는 성 요셉 경당이 문을 열고, 이곳에서 첫 미사가 봉헌됩니다.
- 1914년: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만 전념합니다.
- 1926년: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나고,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습니다.
- 1930년: 탄생의 파사드의 모든 탑 공사가 끝납니다.
- 1936년: 내전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심각한 파괴 행위를 겪습니다.
- 1976년: 수난의 파사드의 모든 탑 공사가 끝납니다.
- 1986년: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수난의 파사드의 조각군을 제작합니다.
- 2018년: 수난의 파사드 박공 꼭대기에 십자가가 설치되고, 파사드가 완성됩니다.
- 2020년: 코로나19로 3월부터 10월까지 공사가 중단됩니다.
- 2021년: 성모 마리아의 탑 위에 별이 설치되고, 탑이 완성됩니다.
- 2026년: 6월 10일, 교황 레오 14세가 주례하는 예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공식 봉헌됩니다.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년에 맞춘 행사이며, 15년 만의 교황 바르셀로나 방문입니다.
- 2036년: 건설위원회에 따르면 영광의 파사드, 그리고 이와 함께 성당 전체의 완공 예정 연도입니다. 다만 장식과 조각 작업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