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안토니 가우디는 자신이 끝내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할 성당을 꿈꾸었습니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입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당을 둘러싼 수많은 일화가 생겨났습니다. 건축가 선정부터 그렇습니다. 가우디가 첫 번째 건축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이 글에서는 여러분이 미처 몰랐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10가지를 소개합니다.

목차
-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
- 사라진 설계도
- 직선이 없는 건축
- 여러 나라에서 온 돌
- 그리스도의 나이
- 첫 번째 건축가는 가우디가 아니었다
- 가우디의 무덤
- 한 서적상의 프로젝트
- 2026년의 상징성
- 파사드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됩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외관이지만, 여행자들은 곧바로 또 다른 특징을 알아차립니다. 바로 압도적인 높이입니다.
이 모데르니스메 성당은 공사가 끝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됩니다. 건물 전체에서 가장 웅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172.5미터 높이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가우디의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61미터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 울름 대성당보다 11미터 더 높아집니다.
가우디는 모든 것을 계획했지만… 다 남지는 않았습니다
가우디는 공사가 끝나기 훨씬 전에 자신의 생이 다하리라는 것을 알고, 프로젝트를 완성된 형태로 남기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세상을 떠날 무렵 가우디에게는 공사의 여러 단계에 관한 수많은 스케치와 설계도, 지침이 있었습니다. 이후의 건축가들은 그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성당의 구조와 장식을 하나하나 만들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스페인 내전 중에 이 자료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성당이 레우스 출신 천재가 상상한 모습과 100% 같을 수는 없습니다.
직선이 하나도 없는 건축
가우디가 따른 가장 흥미로운 건축 원칙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성당 내부에는 직선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우디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자연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마찬가지여서, 모든 기둥과 벽이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하느님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방문객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직선의 질서 정연한 패턴이 없는 건축물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돌로 지은 성당
성당의 외부와 내부를 이루는 재료를 고르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돌은 하나하나 채석장에서 현장으로 옮겨진 뒤, 경도와 내구성을 평가하기 위한 검사와 시험을 거칩니다.
이처럼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오랜 세월 동안 아주 많은 채석장이 이용되었습니다. 몬주익의 채석장부터 칸타브리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갈리시아의 채석장까지 다양합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돌은 석재 가공 전문가들의 손을 거칩니다. 이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성당에 놓이는 돌이 하나도 똑같지 않도록 다듬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이
성당을 여러 번 방문하면 갈 때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해 몰랐던 것을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수난의 파사드에는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숫자가 새겨진 작은 사각형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마방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숫자가 적힌 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세로, 가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합은 33입니다. 이 숫자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와 같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첫 번째 건축가
가우디와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수십 년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이 성당이 처음부터 레우스 출신의 천재에게 맡겨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 책임을 맡은 사람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라는 건축가였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원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네오고딕 양식이 주를 이루던 당대의 취향에 맞춘 소박한 성당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가 사임한 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31세의 안토니 가우디가 프로젝트를 맡아 오늘날의 경이로운 건축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잊힌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부터 현재의 책임자까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든 모든 건축가를 만나 보세요.
가우디의 무덤
가우디가 프로젝트를 맡은 순간부터 그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인연은 매우 깊었습니다. 가우디는 인생의 43년을 이 작품에 바쳤고, 그중 12년은 오로지 이 성당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74세에 전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을 때, 바르셀로나는 이 세계문화유산을 만든 건축가를 기리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의 가르멜 산의 성모 경당에 그의 묘소를 마련했습니다. 그 뒤로 그의 유해는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한 서적상의 프로젝트
성당 건설은 주교나 바르셀로나 시청, 첫 번째 건축가의 뜻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서적상 조셉 마리아 보카벨라가 로마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성당을 짓고 싶다는 꿈을 품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성 요셉 신심회를 설립한 그는 꿈을 실현할 이상적인 부지를 찾기 위해 10년 넘게 애썼고, 그 꿈은 모데르니스메 건축의 걸작으로 탄생했습니다.
2026년: 상징으로 가득한 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사는 최근 몇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원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2026년에 성당 건설을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2026년은 완공된 성당을 세상에 선보이기에 더없이 뜻깊은 해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2026년은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기 때문에, 그해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마지막 돌을 놓고 싶다는 바람을 사회 전체가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와 재정 문제로 이 꿈을 완전히 이루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원래 2026년이 공사 완료 시점으로 발표되었지만, 현재 건설위원회는 2036년을 “건축 부분, 즉 수직 구조의 완성”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신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2026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봉헌됩니다. 성당의 중앙 탑입니다. 실제로 1년 내내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축제가 열립니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파사드
사그라다 파밀리아 방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 가운데 하나는 성당 주위를 걸으며 여러 파사드를 감상하는 것입니다. 건축 전문가가 아니어도 파사드마다 ‘색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성당이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는 건축물이 되기를 바란 가우디의 뜻과 맞닿아 있습니다. 가우디는 각 시대의 건축적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파사드를 하나하나 따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대표적인 흥미로운 사실들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